10년차 개발자, Medium 을 시작합니다.

Ethan Park
5 min readJan 17, 2021

--

Photo by Scott Hewitt on Unsplash

안녕하세요, 저는 삼성전자에서 서버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21년 새해가 밝았고, 며칠 전 제가 속한 그룹을 담당하고 있는 임원께서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님, 생일축하합니다! 가족과 함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실 그 날은 제 생일은 아니었습니다. 입사한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회사 인사시스템이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날을 제 생일로 표시하기에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뭐, 생일이 되었든, 입사 10주년이 되었든 사실 저에게 마음써주시는 임원분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문득 든 생각이, 내가 여기서 10년이나 일했구나. 대학생 때 인턴을 했던 전 회사를 빼면 사실상 이 회사가 첫 직장이니, 내가 s/w 개발일을 한 것도 벌써 10년이나 지났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제가 삼성에서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처음 보는 동기들과 무려 한 달동안 연수원에서 동고동락하며 연수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생전 처음으로 서버개발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관련지식이 전무한 깨끗한 뇌를, 하루하루 벅차게 들어오는 task 들을 완수하기 위해 잡식성으로 이것저것 순서없이 뒤죽박죽 정제되지 않은 지식으로 채워넣는 신입사원 시절을 보냈습니다. 점점 연차가 쌓여가면서 지도선배로서 몇몇 후배들의 OJT도 지도해주기도 하고, 프로젝트에서 한 부분을 전담하며 주도적으로 일해보기도 하고, 연차 높으신 선배님들 앞에서 제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서는 제 목소리를 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주니어 개발자에서 시니어 개발자로 발전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입사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입사한 당시는 갤럭시 S를 필두로 S2, Note 시리즈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던 스마트폰 태동기였습니다.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안드로이드 생태계 기반의 수많은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우리 회사에서도 미디어&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을 흡수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저도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운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소위 핫한 서비스들(Media Contents, Cloud Service, Health, LBS, Big Data) 에 조인하게 되었고 덕분에 다양한 기술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내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인 C-Lab에도 선발되어 1년간 AI기반 디지털헬스 서비스를 최초 기획부터 개발까지 완성했었던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정말 짜릿했었습니다. 최근에는 Blockchain 개발부서에서 일하면서 Privacy 관련 기술을 직접 개발해보는 경험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관리성 업무만 10년째 담당하던 동기들도 더러 있는데, 이만하면 전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좋았던 것들만큼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우리 회사는 제조회사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h/w 디바이스를 판매해 남는 마진이 주 수익원이기에, Business Model 역시 단말판매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IT 서비스의 Lifecycle 은 출시와 동시에 시작이지만, 제조업의 Lifecycle 은 IT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개발 중인 서비스는 새로 출시되는 단말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 불과했고, 서비스의 수명주기 역시 단말의 개발주기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트렌디한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서 적용하기에는 더없이 좋지만, 그 기술도메인을 상당시간 깊이 연구해서 고도화하기에는 어려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지요.

또한 산업보안이 엄격히 요구되는 사내문화로 인해 무언가를 공유하거나 다른 회사의 개발자 혹은 커뮤니티와의 교류가 그리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컨퍼런스나 세미나는 종종 참석했지만, 그리 능동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는 것에만 익숙했지 저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는 부족했던 것이지요. 수많은 Slide-Share, Youtube 등에 제 자료 하나 없는 현실이니까요.

제가 이 회사에서 가장 오래 봤고, 제일 존경하는 선배님은 종종 이런 말을 하십니다.

자기가 열심히 연구한 기술은 공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것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 기술이 사용되지 않았다면 그 기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 말씀이 제가 Medium 을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아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맞다면 그 것을 정말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Medium을 통해 공유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리하게 되고, 그 정리하는 과정은 아마도 제 지식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덤으로 제 글을 읽는 분들의 귀중한 피드백도 얻을 수 있을 것 같구요.

그리고 다음주를 마지막으로, 저는 곧 육아휴직에 들어갑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두 아이를 직접 돌보게 되었고, 아이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기대도 되고 한편으로는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개발필드에서 일정기간 휴직은 꽤 큰 Risk 요인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개발경험을 정리도 하고, 공부도 할 겸, 작은 개인프로젝트를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주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방향은

  1. 해봤던 기술을 다시 한번 구현해보기
  2. 해보지 않았지만 하고 싶었던 기술을 직접 구현해보기
  3. 이왕이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만들어보기

정도로 잡아보았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난 김에 Medium 에 가입하고 바로 글을 써내려가는 걸 보면, 언제나 그랬듯 일단 시작은 좋은 것 같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은 이만 키보드를 접습니다.

--

--

Ethan Park
Ethan Park

Written by Ethan Park

Software engineer on paternity leave.

Responses (1)